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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학생들 ‘다꾸’는 다르다? 힙한 ‘일잘러’의 상징 된 이 앱 [비크닉] | 중앙일보

최근 한 기업에서 마케팅 인턴십을 마친 서모(24)씨는 퇴사 후 가장 먼저 노션(Notion) 페이지를 열었다. 그동안 수집한 트렌드 기사와 프로젝트 기록, 업무 인사이트를 한곳에 정리하기 위해서다. 단순한 메모가 아니다. 자신이 어떤 관심사를 갖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일해왔는지를 구조화해 보여주는 일종의 디지털 포트폴리오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노션은 단순한 기록 앱이 아니다. 누군가는 공모전 준비 과정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독서 기록을 쌓고, 또 다른 누군가는 취업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공개한다. SNS 프로필을 꾸미듯 자신만의 노션 페이지를 만들고 공유하는 모습도 흔하다. 기록을 남기는 공간을 넘어 자신을 설명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션 설문조사에 따르면 10~24세 중 76.%가 업무에서 AI 도구를 활용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 노션 학생 계정 중 한국 학교는 상위 20개 중 6곳이다. 이미지 AI 생성

노션에 따르면 수백만 명의 한국 사용자 10명 중 1명은 학생 교육용 계정을 사용하고 있다. 전 세계 학생 사용자 가운데 한국 학생 비중도 약 10%에 달한다. 개강 시즌인 지난 3월에는 학교 카테고리 템플릿 다운로드 수가 6만 4000건을 넘어섰다. 수업 시간표와 과제 관리표, 시험 준비 노트 등을 정리하기 위한 수요가 집중된 결과다.

단순 기록 앱 아닌 ‘개인 운영 체제’

노션은 2013년 미국에서 시작한 생산성 소프트웨어 서비스다. 얼핏 보면 메모 앱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서 작성, 일정 관리, 프로젝트 운영, 데이터베이스 기능을 하나의 공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올인원 워크스페이스(작업 공간)’에 가깝다. 예를 들어 대학생이 조별과제를 진행한다고 가정해보자. 일반적으로는 메신저로 대화하고, 구글 문서로 글을 작성하고, 일정은 캘린더에 따로 기록한다. 반면 노션에서는 과제 계획서부터 역할 분담, 자료 조사, 일정 관리, 발표 준비까지 한 페이지 안에서 관리할 수 있다. 여러 앱을 오가지 않아도 된다. 대표 메모 앱인 ‘에버노트’를 쓰던 이들이 노션으로 갈아탄 이유도 이런 편리함 때문이다.

노션은 각 프로젝트 진행 상황과 담당자 지정, 의견 조율 과정을 한번에 관리할 수 있어 효율성을 추구하는 학생이나 기업에서 선호하는 생산성 툴이다. 사진 노션 홈페이지 캡처

정보 찾기보다 정리와 연결이 중요하다

노션 인기의 배경으로는 AI 환경 변화가 있다. AI가 정보를 대신 찾아주고 만들어주는 시대가 되면서 중요한 능력은 정보를 ‘찾는 것’보다 정보를 ‘정리하고 연결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노션은 이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구다. 과거에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지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정보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활용하는지가 경쟁력이다. 노션이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단순한 기록장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자기소개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노션 캠퍼스 리더로 활동하는 한국 외대 신지은 씨는 “요즘 대학생들은 AI로 자료를 구성하고 이를 노션에 정리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학습 체계 안으로 가져와 구조화하는 도구로 노션을 활용한다는 얘기다.

노션은 수업과 과제를 쉽게 관리할 수 있는 템플릿을 제공하는 한편, ‘캠퍼스 리더’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33개 대학교에서 54명의 앰배서더를 지원하고 있다. 사진 노션

이 같은 흐름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노션이 지난해 9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업무 과정에서 AI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답한 10~24세 비율은 76.7%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박대성 노션 한국지사장은 “AI를 활용해 정보를 생성하는 것을 넘어 이를 정리하고 구조화하는 역량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면서 “학생들이 자신만의 생산성 시스템을 구축하고 커뮤니티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꾸’ 하듯 노션 꾸미기

대학생들의 생활 방식이 바뀐 점도 노션 확산의 배경으로 꼽힌다. 오늘날 대학생들은 조별과제와 공모전·대외활동·인턴십·포트폴리오 준비를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노션은 이러한 과정을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갖는다. 실제로 노션 마켓플레이스에서 커리어 및 포트폴리오 관련 템플릿 복제 수는 약 44만 건에 달한다. 일정 관리와 과제 현황, 포트폴리오 구성을 미리 설계해둔 템플릿을 활용해 학습 관리뿐 아니라 취업 준비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것이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이채민(25) 씨는 “대부분 학생은 수업이나 대외활동 일정을 노션에 정리한다”며 “여러 앱을 써봤지만, 직관적이고 깔끔한 인터페이스가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노션 마켓플레이스에는 3만여 개의 템플릿이 등록돼 있다. 목적에 맞는 양식을 다운받거나, 내가 만든 템플릿을 공유할 수도 있다. 사진 노션 홈페이지 캡처

여기에 이른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문화도 한몫했다. 과거 종이 다이어리에 스티커를 붙이고 일정을 기록한 것처럼, 디지털상에서 노션 페이지를 꾸미는 셈이다. 학생들은 독서 기록이나 여행 계획표를 정리하는 동시에 커버 이미지와 이모지, 위젯 등을 활용해 대시보드를 꾸미고 공유한다. 마켓 플레이스에서는 직접 만든 템플릿을 일정액 수수료만 내면 다른 이용자에게 판매할 수도 있다. 생산성 도구이면서도 SNS 프로필처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이 노션의 차별화한 특징이다.

‘일잘러’들이 ‘자소서’로 쓰는 앱

노션의 인기에는 문화적 요인도 있다. 국내에서는 몇 년 전부터 직장인들 사이에서 ‘일잘러(일을 잘하는 사람)’가 사용하는 생산성 도구라는 이미지가 형성됐다. 대학생들도 포트폴리오와 자기소개서, 프로젝트 기록을 노션으로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비스를 접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편리한 도구라기보다 ‘체계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상징’처럼 인식된 것이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홍보 노션 페이지. 스태프의 비하인드 이야기를 담은 '촬영 실록'을 콘셉트로 했다. 사진 노션

노션에 익숙한 20대 맞춤형 마케팅도 등장했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스태프의 촬영 후기를 담은 노션 페이지를 운영해 화제를 모았다. 이어 개봉한 ‘살목지’ ‘군체’ 등도 노션 페이지를 활용하며 영화 세계관과 제작 후기를 공유하고 있다. 특정 영화가 개봉하면 “이번에도 노션 페이지가 나올까”를 기대하는 반응까지 등장할 정도다. 영화 홍보 업계에서도 하나의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기업들은 채용 브랜딩에도 노션을 활용한다. OTT 플랫폼 왓챠는 채용 페이지를 구축해 회사 소개와 채용 정보를 제공했다. 정보 수정 및 관리가 쉽다는 실용적 이유도 있지만, 개방적이고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보여주는 효과도 있다.

노션은 2021년 103억 달러(약 14조원)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급격히 성장하는 중이다. 미국에서는 포춘 100대 기업의 62% 이상이 고객이다.

노션에게 한국 시장은 중요한 거점이다. 지난 2020년 기준 미국 다음으로 한국이 가장 많은 이용자를 차지했을 정도다. 새로운 IT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한국인의 얼리어답터 성향이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이에 노션도 최초 외국어 버전을 한국어로 출시했다.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일상에서 활용하려는 수요가 맞물리면서 한국은 노션의 대표적인 성장 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AI가 정보를 만드는 시대에 사람들은 정보를 정리하고 연결하는 능력을 경쟁력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노션의 인기는 생산성 앱의 성공이라기보다, 자기 생각과 경험을 구조화해 보여주려는 시대적 욕망의 반영에 가깝다. 기록 앱으로 시작한 노션이 어느새 20대 사이에서 ‘자기 증명의 무대’가 된 이유다.

이소진 기자 lee.soj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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